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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남신도총회 목사님설교
정재면 2016-05-19 추천 0 댓글 0 조회 4508

*남신도 총회(2015.12.20.)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않아 목사님 말씀을 못 들으신 것이 아쉬어 여기에 총회에서의 설교말씀을 올려드리니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자의 복"

 

 

교육학에는 하아로우의 실험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하아로우 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아기원숭이들 앞에 두 개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엄마원숭이처럼 만들어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두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엄마원숭이를 만들어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기 원숭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첫날에는 아기원숭이들이 두 인형 속에 있는 우유를 모두 빨아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철사로 만든 인형에게는 가지 않고 천으로 만든 인형에게만 가서 우유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에서 보듯이 동물들도 부드럽고 온유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날카롭고 딱딱하고 매정한 사람보다 부드럽고 편안하고 온유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재능 같은 기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자는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온유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먼저 온유함이 아닌 것부터 두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냥 좋기 만 한 것이 온유함이 아닙니다.

자기 주관도 없이 마냥 좋기만 한 성격이 온유함이 아닙니다. 온유함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외유 내강입니다. 속으로는 뚜렸한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론 부드럽게 남을 감싸 안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남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일을 부탁해서 가다가 도중에 또 누가 부탁을 하면 이전 것은 잊어버리고 그것도 들어주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주위사람들은 그사람 참 호인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사자의 마음속에는 점점 분노가 쌓여 갑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남의 부탁을 들어주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이 아주 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막 대하고 무시하고 얕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아주 훌륭한 성격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강한 모습도 필요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온유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때로는 박력과 추진력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화내지 않고 마냥 참는 것이 온유함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인내심이 있는 것은 훌륭한 장점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것만이 온유가 아닙니다. 때로는 거룩한 분노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온유의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민수기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자 미리암과 아론은 그 일을 비방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자 그녀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이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세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을 내던지며 분노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 무수한 희롱과 모멸 속에서도 한번도 분노하지 않으셨지만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무섭게 분노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분노는 최대한 절제해야 하지만 죄와 악과 사탄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도 때로는 악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사람이 받는 축복은 무엇인지 3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번성의 축복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산에는 맹수들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맹수들은 없고 토끼나 다람쥐 같은 것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남산이나 아차산에 호랑이가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끼나 다람쥐는 뛰어다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맹수는 힘은 세지만 번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온순한 동물들은 힘은 없지만 번식력이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속에서도 이러한 진리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성격이 강한 사람은 영적인 번식력이 없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온유한 사람은 영적인 번식력이 있습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다칠까봐 곁에 가지 않습니다. 자꾸 상대방의 약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온유한 사람에게는 편안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온유하면 번성의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둘째,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53-10절에 나오는 팔복을 한번 쭉 훑어보십시오. 그러면 거의가 하늘의 축복, 영적인 축복을 말씀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땅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에를 들어 제가 식당을 차렸습니다. 식당이름은 신암식당, 바쁜 점심시간입니다. 그런데 손님이 여기 밑반찬 좀 더 주세요!” 라고, “밥 좀 더 주세요.” “왜 이렇게 늦어요? 빨리좀 주세요!” 라고 짜증나게 합니다. 그렇다고 식당 주인이 짜증을 내거나 에이그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는 식으로 대한다면 그 신임식당이 잘 되겠습니까? 또한 그런 사람이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손님 중에 자기 요구의 목소리가 크고 성가시게 구는 사람이 성공의 키맨(key man)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잘 해주면 그 사람이 나가서 그 식당을 열심히 선전해 줄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잘해줄 정도의 넉넉한 마음의 주인이라면 웬만한 사람의 마음은 빼앗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물질적인 축복도 따라올 것입니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끝까지 온유하고 친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새 각 기업마다 친절도우미를 넘어 고객감동사 라는 호칭까지 붙여가며 친절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젠 가격보다 서비스가 좋아야 사업이 번창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사람에게 물질이 흘러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보다 온유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마음의 평화입니다.

시편 37:11( 오직 온유한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강한 힘은 외적인 평화(peace)는 주지만 내적인 평안.샬롬(shalom)은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말씀에 길들여진 온유한 사람에게는 내적인 평화가 주어집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원래 피스(peace)라는 말은 팍스(pax)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를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시대라고 합니다. 즉 로마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평화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때 힘에 의한 일시적인 평화는 있었지만 사람들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은 없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들은 오히려 그때가 영적으로 흑암의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힘이 있고, 성공하고, 돈이 많아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이 피스(peace)는 줄 수 있어도 샬롬(shalom)은 줄 수 없습니다. 샬롬은 오직 주님께 붙들린 온유한 사람의 마음속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은 시애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히려 우울증 환자들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환경적으로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마음의 평화는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주님의 온유한 성품을 닮아갈 때 비로소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샬롬이 그 마음속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유란 헬라어로 <프라우스> 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을 순종하게 될 때> 헬라 사람들이 <프라우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온유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온유함이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꺾는 것이 온유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얼굴이 부드럽고, 언행이 부드럽고, 성품이 부드럽습니다. 목도 부드러워서 고개를 잘 숙입니다. 생태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발달된 것일수록 부드럽다고 합니다. 광물보다는 식물이 부드럽고, 식물보다는 동물이 부드럽고, 동물 중에서 사람이 제일 부드럽고 사람도 어릴수록 부드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 가장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이

땅에서 번성하고(사람들이 몰려듬)

물질적 축복을 받고(친절해야 됨) 그리고

마음속에 평안이 주어집니다.(주님의 말씀에 길들여 짐, 자신의 의지를 꺾음

 

이렇게 온유하게 사는 길이 이기는 길이고 성공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가정과 일터와 인간관계에서 끝까지 온유함을 잃지 않고 넉넉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이 세가지 축복을 듬뿍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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